[권은정의 'Social Job'] '함께 일하는 세상' 이철종 대표

프레시안/기사입력 2009-03-19 오전 7:24:23

<프레시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큰 관심을 모으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나은 모습을 찾는 새로운 인터뷰 연재를 마련한다.

전문 인터뷰어 권은정 씨가 직접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이 연재는 총 2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소장 이영환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 인적 자원 개발 교육과 사회적 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성공회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이다. (☞사회적기업연구센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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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일하는 세상' 이철종 대표. ⓒ프레시안

청소 용역업체 '함께 일하는 세상'은 2002년 기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그때 심정은 이랬다. 같이 일하는 우리 4명이 끼니 걱정 하지 않을 정도로 일할 수 있었으면. 그런데 2009년 현재 본사 직원만 120여 명이다. 작년도 매출은 약간 주춤하는 바람에 겨우(!) 37억 달성했다.

이쯤만 해도 충분히 감동적인 중소기업 성공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세상'은 그보다 더 속 깊고 아름다운 내용을 가지고 있다. 더 많이 벌기만 하려는, 그래서 더 많이 독차지하려는 그런 보통 기업이 아니다. 기업 이윤이란 일한 사람들 모두가 제대로 나눠가지는 것,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주식회사다.

이 기업의 대표로 일하는 이철종 씨를 만나러 수원시 정자동에 있는 회사로 갔다. 현관 앞에서 휴대전화 통화 중인 '젊은이'를 만났다. 그의 사진을 미리 보지 못했더라면 '대표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것이다. 신입사원처럼 보이는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양복상의 단추를 하나도 풀지 않았다. 다리를 꼬고 앉지도 않았다. 이야기하는 내내 바른 자세로 누구에게라도 또박또박 존칭을 빠트리지 않았다.

요즘이야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정도가 되었다. 2007년도에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 육성법'을 만들면서는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세상'이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대표는 이미 그전부터 사회적 기업을 스스로 일궈 온 사람이다. 취업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업 이윤을 구성원 모두가 나눠가지는 방식을 진작부터 실행해 온 것이다.

그가 독립회사를 차린 것은 2002년. 그와 세 명의 50대 여성이 창립 멤버였다. 그들의 사업 내용은 아파트 입주청소였다. 그때 이 대표의 각오는 이랬다.

"하다가 망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시작한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고 같이 일하는 분들을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주민들이 자리가 잡힐 때 까지 어떻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이 대표가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 한 '주민'이란 바로 자활센터의 주민들이었다. 2001년 당시 정부에서는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으로 자활 사업단을 운영했다. 노동 취약계층에게 일정 기간 동안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기반을 형성해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였다. 자활 사업단은 센터를 중심으로 함께 일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당시 경기도 시흥의 한 자활센터에서 실무자로 일했다. 월급쟁이로 일하게 된 그의 첫 직장이었다.

"사업단 관리와 운영을 돕는 일을 했지요. 주민 분들은 실무 능력이 약했어요. 원래 사업 설계는 주민들이 자립할 기반을 만들어 나가게 하는 것이었지만,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경영 방식을 찾아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당시 그 자활 사업단은 청소 일을 했다. 배운 것 없고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없으니, 더구나 나이도 젊지 않은 주민들에게 몸으로 때우는 일은 그래도 제일 쉬워보였다.

"우리 사업단이 한 달 일하고 벌어들인 돈이 2~300만 원 정도였어요. 10명이 넘는 인원이었는데 말이지요. 사업 매출로 보자면 형편없는 구조였지요. 정부 보조금이 있었으니 버티는 것이었지요."

사업단에 대한 정부 지원은 3년이 기한이었다. 독립해 나가야하는데 어디로? 어떻게? 주민들은 그저 불안할 뿐이었다. 그는 희망을 가지라, 잘될 것이다, 하면서 주민들을 다독거렸다. 그게 거짓말인 줄은 그도 알고 주민들도 알고 있었다. 갈 데 없는 주민들의 등을 떠미는 것 같아 실무자로서 그는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단다.

▲ 이철종 대표는 국가 지원을 받는 자활센터의 안정적인 월급쟁이였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자활센터에서 만난 갈 데 없는 주민과 함께 '함께 일하는 세상'을 창업했다. ⓒ프레시안
'내가 같이 나가서 함께 일해보자!' 국가 지원 기관의 안정적인 월급쟁이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회사 '함께 일하는 세상'은 봉고차량에다 청소도구를 싣고 아파트 단지를 누볐다. 그때만 해도 건설 경기가 좋아서 신축 아파트가 많았다. 부평 쪽 신축 아파트 단지마다 다니며 '찌라시'를 붙였다. '입주 이사 청소합니다.' 문의 전화가 오면 달려갔다. 그러나 하루에 한 가구 청소하는 게 전부였다. 받는 돈은 15만 원. 한 달 열심히 일해도 2~300만 원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늘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겨울철 1~2월에는 매출이 제로였다.

"특별한 기술도 필요하지 않고 노동 강도도 그리 세지 않을 것 같아서 청소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게 봤던 것 같아요. 하하하…."

이 대표는 당시 어려웠던 시절을 웃음으로 가볍게 날려버린다. 그는 굳이 주민들을 책임져야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냥 다른 사업단으로 자리를 옮겨 일을 계속하면서 월급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굳이 고생길에 들어선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젊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쨌거나 주민 분들을 남겨두고 제가 떠날 수는 없었어요."

20대 후반에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면 학생 시절부터 확고한 가치관이나 소신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니었고요, 그냥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어요. 사회적 문제에 참여할 기회를 많이 가지고 싶어 했지요. 제대 후 (대학 복학하지 않고 곧장) 사회로 나가 한 1년 정도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만 살아가는 제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평소 마음속에 담고 있던 대로 살아보고자 시간 나면 지역단체를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활센터와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그는 실무자로 일하기로 마음먹고 작게나마 운영하던 자신의 인쇄기획 사무실을 바로 정리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더 많은 돈을 버는데 전력투구한다. 돈이 주는 이득이 무한하다고 믿는다. 이 대표는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인 것 같다.

"글쎄요, 저는 어려서부터 넉넉한 생활을 안 해 봐서 그런지, 물질적인 욕구가 강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세끼 굶지 않고 누울 잠자리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저는 그렇게 보이는 가치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돈은 생활이 되는 정도 벌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하는 세상'의 초기 단계가 아파트 이사였다면 그 다음 단계는 건물 청소 용역이었다. 이때부터 이 대표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했다. 예리한 판단력과 용감한 도전 정신, 무조건 매달리기도 그중 한 능력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건물 청소 용역을 따냈을 때의 이야기다.

"시흥에 새로 문을 여는 관공서가 있었어요. 관장님을 찾아가서 무조건 우리한테 맡겨달라고 졸랐지요. 근데 실적도 없고 경험도 없는 우리한테 뭘 믿고 주겠어요? 더구나 자활 사업단 경력을 이야기 하니까 '자활? 재활?' 하시면서 혼동하시더라고요."

그는 실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건물 개관식 행사 전 대청소를 해보이겠다, 못하면 돈도 안 받겠다고 했다. 그 전에 1년간 쌓은 경험과 장비를 총동원했다. 왁스머신, 카펫 청소기를 돌리고, 세제통과 스퀴지가 달린 유리창 청소용 벨트를 차고 건물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었다. 기껏해야 걸레와 빗자루 정도를 예상한 그 기관장은 감동했다. 결과는 연간 3000만 원짜리 용역!

▲ '함께 일하는 세상'은 온갖 시행착오 끝에 1년 만에 연간 3000만 원짜리 관공서 용역을 따냈다. 2008년 매출은 37억 원. 그러나 이 기업은 매출의 대부분을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노동자에게 재투자한다. ⓒ프레시안
기업 출발 후 확보한 첫 수익 사업이었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서 공공기관 청소 용역으로 영역을 확보했다. 그해 여름에는 종합병원 청소 용역도 따내고 나머지 주민10명을 일자리로 불러낼 수 있었다. 그때 그는 진심으로 기뻤단다.

15명의 규모의 기업을 이끄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잘해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어떻게 따낸 용역인가, 지금 잘해내지 않으면 우리는 끝이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병원 바닥을 닦으며 다짐했다. 그러나 회사원인 주민들은 이 대표만큼 각오가 강하지 못했다.

"자주 싸우세요. 사는 게 워낙 팍팍해서 그런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 갈등이 생기면 그게 바로 크게 돼요, 병원로비에서 청소하다가 댓거리하기도 하세요. 고객들 앞에서 싸우는 건데…. 참, 난감했지요."

'함께 일하는 세상'은 2003년도에 실업극복국민재단으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열성적으로 일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게 입증되었다. 그리고 2008년도에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세상'은 매년 기업 매출이 상승했지만 수익률은 미미했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인건비 계산은 제대로 했다. 그게 바로 종사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초기에 대부분 청소 용역 업종은 장시간 노출에다가 최저임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구조였다. 종사자들 누구도 그런 것을 불만으로 여길 수 없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세상'은 이런 상황을 절대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최소한 주40시간으로 설계해서 갑니다. 초과근로 발생시 150%급여를 지급하는 시스템이고요. 보통 처음 들어왔을 때 한 달에 2번 쉬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4번, 주5일제 근무에 근접하려고 합니다. 용역 현장마다 근무시간은 줄어드는데 급여는 올라가는 그런 식으로 하니까,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동종업계와 비교할 때 근무 조건이 확실히 좋지요.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자연히 높아지고 또 그게 곧장 서비스로 이어지지요. 몇 년 지나니까 우리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세상'이 잘나가는 기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달리 또 있겠는가.

지금 회사의 전체 인원은 120명(독립 채산제로 운영되는 사업체 직원 50명까지 합하면 170명)이다. 요즘은 규모가 커져서 성장세가 약간 둔화되고 있지만 매년 100%에 달하는 신장세를 꾸준히 보여 왔다.

이 대표는 30대 중반이다. 대표가 젊으니 회사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젊고 편안하다. 본사실무진 인력관리팀도 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연륜이 더 오랜 직원들도 있다.

'함께 일하는 세상'에 입사하는 사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애초 사회적 기업이라는 취지를 이해하고 오는가?

"보통 단순한 취업 목표를 가진 이들도 있지만,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공감대를 가진 이들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데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오는 이들이 맨파워도 있고 자기 헌신성도 좋고 그렇습니다. 초창기 실무진들은 자활 사업에 종사하던 활동가들이 많았는데 다들 청소업을 담당한 경험자들이었어요. 자활 사업 방식에 대한 한계를 넘어 도전하고 싶어 했지요. 그래서 얘기 한 두 마디면 바로 의기투합, 같이 일하게 되는 거지요."

현재 인적 구성은 단체 경력자나 기업 근무자나 비슷한 비율이다. 이들이 한마음으로 가는데 별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사회적 사명과 기업 이윤 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인적 구성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서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단체 쪽에서 오는 이들은 영리에 약할 것이다, 기업 쪽에서 오는 이들은 이익만 추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배려는 또 그 반대일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는데요, 그건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비영리 출신이라 해도 자기 중심적인 직원이 있을 수 있고, 영리기업 쪽에 있던 사람이라도 자기 헌신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훨씬 강한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 인력관리팀 직원 중에 잘나가던 영업맨 출신이 있는데 그가 지금 현장 위기를 가장 잘 만들어 가는 책임자다. 주민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진심으로 대하니 일터 능률도 최고라는 말이다.

"능력은 사람 안에 내재된 본성을 어떻게 찾아주느냐에 따라 충분히 발휘되는 것이지요. 고정된 틀에 가둬두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디에서 일하느냐가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일하느냐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 '함께 일하는 세상'의 노동자가 처음부터 사회적 기업에 공감대를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함께 일하는 세상' 안에서 주민을 가족처럼 아끼는 일꾼으로 거듭난다. ⓒ프레시안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 쪽에서도 유능한 기업가로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엔가 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사회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회적 기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가 무슨 새로운 일자리 창출하는 기업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그런 역할이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취업이라는 영역에 진입조차 못하던 분들에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기업인 것이지요. 학벌이나 재산이나 하는 그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영역, 그 문호를 개방하고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대표는 스물몇 살 청년일 때도 주민 아주머니들과 함께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일하면서 즐거웠다. 다른 이들은 3D 업종이라고 피해갈 때 그는 정면으로 이 업종을 선택했다. 그와 주민들에게 청소 사업이야말로 '일자리'라는 희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청소 용역 사업의 미래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굉장한 성장을 이뤄낼 사업 아이템입니다. 기술력을 확보하면 더욱 전문화되고 특화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사실 80년대만 해도 청소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요. 이사 청소도 직접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요즘은 이사 청소는 당연히 청소 전문가에게 맡기고 거주 공간도 다들 가사 도우미 불러서 청소하시잖아요? 이제 거주지 청소도 전문 클리닝에 맡기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굉장한 시장이 될 거에요. 청소업이란 게 고부가가치를 가지는 아이템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일자리 만들기에는 굉장한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 청소 용역업에 대한 가능성은 대기업 쪽에서도 진지하게 견주고 있을 정도다. 만약 대기업이 청소 시장에 뛰어들면 좀 불안하지 않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이 대표에게서 오히려 반대의 답이 돌아온다.

▲ "이철종 대표는 다른 이들은 3D 업종이라고 피해갈 때 정면으로 이 청소업을 선택했다. 그와 주민들에게 청소 사업이야말로 '일자리'라는 희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대기업이 한 군데 정도 성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장 확대라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에 대기업 계열사가 뛰어들었다가 접었었지요. 2~3년 만에 성과 내겠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입니다. 청소에 대한 수요자들의 인식 변화라는 게 급속히 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최소한 5~6년 정도는 두고봐야합니다. 청소 사업을 경험해보지 않고 단순히 기획만 하는 이들이 갖는 한계라고 볼 수 있지요. 대기업 쪽에서 이 방면에 긴 안목을 가지고 조금 더 버티어줬으면 하는 게 저희 바람입니다."

내세울 것도 기댈 언덕도 없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일하고자 나선 젊은이, 그들이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돈을 벌수 있도록 같은 편에 서 있는 젊은 사업가. 그가 있으니 세상 주변이 아주 든든하다. 이철종 대표 화이팅!

/권은정 전문인터뷰어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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