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쓰가 떴다!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 탐방기

 

 ‘청년 세대’ 하면 따라붙는 ‘니트족’, ‘캥거루족’과 같은 수사어에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업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청년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그러나 청년들은 독립된 공간과 부모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단지 지독한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저지르지 못할 뿐이다. 게다가 한국, 특히 서울에서 방 한 칸 얻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전세금을 마련하기 힘든 청년들은 독립하는 순간부터 다달이 30-40만원이나 하는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나마도 반지하방이나 옥탑방 같이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첫 살림을 꾸리기 일쑤다. ‘자유’를 얻기 위해 가히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큰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계속 ‘독립 중’이다. 학교나 직장 때문이건, 자발적이건, 청년들은 부담과 위험을 감수하고 부모님 집을 나서 새로운 공간에 둥지를 튼다. 가족에게 의존해왔던 먹고 사는 문제를 온전히 자기가 책임지는 것, 그것은 불안과 공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행위할 때의 성취감이기도 하다. 공간과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쓰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만약 주변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 여럿 포진해있다면, 그래서 외로움도 덜고,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독립은 더욱 매력적인 경험이 된다. 현실은 ‘싸구려 커피’와도 같을지언정, 독립은 마음먹기에 따라 즐겁고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해방촌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 빈집/빈마을(이하 빈집)’은 그런 의미에서 주거 문제를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반가운 공간이다. 빈집은 게스츠하우스의 의미 그대로 누구나 찾아오고 머물다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러서 먹고 마시고 놀고 쉬고 잔다. 단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은 없다. 스스로 와서 공간을 사용하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돌아가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인원도 정해진 것은 없다. 잠깐 들릴 수도, 장기 투숙을 할 수도 있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한 집에 북적거릴 때도 있다. 빈집의 소개글에 공간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게스츠하우스는 비어 있는 집, 빈집입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넉넉하게 누구든 맞아들일 수 있고, 또 무엇이든 채울 수 있습니다. 빈집은 이름마저도 비어 있습니다. 당신이 그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한국여노 ‘스스로핑크빛미래를쓰는 20대팀’(이하 스핑크쓰 팀)은 대안탐방의 일환으로 빈집을 방문했다. 서울여노의 현정과 마창여노의 권주도 함께 했다. 빈집에 마침 지인이 장기투숙 중이라 쉽게 ‘옆집’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옆집’의 구조는 일반 가정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세 개의 방 중 하나에는 이층침대가 양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고 거실에는 공용 책장과 공용 컴퓨터가, 부엌 싱크대 위에는 ‘부엌 사용법’ 메모가 붙어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우리는 방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에는 빈집 초창기 멤버인 아규와 1년 넘게 옆집에서 장기투숙 중인 달군이 함께 해주었다. 


혜정: 요즘 청년 주거문제가 심각하고, 나 역시 오랫동안 주거 공간 때문에 힘들었는데, 빈집을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고, 재밌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어떤 배경에서 시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규: 2008년 2월에 시작해서 이제 2년이 막 넘었다. 시작은 장난 반, 진담 반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사는 문제’가 중요한 코드였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먹고 자고 놀고 할 것인가가?’가 개인적으로 중요했고, 공간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한 명이 살든, 두 명이 살든 상당한 공간에서 상당한 물건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막상 그 공간에서 잠밖에 안 잔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살면 어떨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마침 집을 구하고 있던 때여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돈을 모으고 일부는 대출받아 공간을 마련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부터 ‘놀자!’고 마음먹고, 물건 하나 없는 빈집에서 ‘빈집들이’를 하게 됐다. 그런데 예상 외로 많이 모여서 4-50명이 함께 놀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반이 넘었다. 그 날 모여서 마지막 사람이 집을 나선 게 3일 뒤였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놀 공간이 참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담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온 사람들에게 집 열쇠 공유하고, 집에 아무도 없어도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혜정: 사적인 공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한다는 게 부담되지는 않았나?

아규: 생각이 약간씩 변하고는 있는데, 처음에는 호기심,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 생각은 없었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선의에 기반한 관계맺기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광고하고 홍보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큰 가지만 잡아 놓으면 알아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1년이 지나고 소문에 소문을 타고 오는 분들이 생기면서 공간에 대한 상이 서로 조금씩 달라졌다. 사적 공간을 오픈한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 서로의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면서 쓸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혜정: 달군은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빈집에서 살게 되었나?

달군: 1년 정도 살았다. 처음에는 빈집에 들어와서 살 용기는 없었다. 친구와 반지하방에서 살았었는데 친구가 나가면서 나도 거취를 정해야 했다. 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근처에서 집을 알아보다가, 이 집이 그나마 가격이 괜찮았다. 빈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친구와 나, 애인, 세 명이서 집을 얻고 같이 살기 시작했다. ‘아랫집’과는 달리 이 집은 외부에서 사람들이 와서 집을 얻고 그것이 빈집이 된 사례다. 지금 여기에는 두 커플과 아이가 한 명 있는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사생활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방을 나눠 썼었는데, 지금은 두 커플이 한 방에서 지내고, 아이가 있는 가족이 한 방을 쓰고, 나머지 방은 손님방으로 쓰고 있다. 방을 각자 나눠 쓸 때 많이 부딪힌 것도, 배운 것도 있다. 그러면서 한 방에서 두 커플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뢰가 구축된 상태에서 같은 방을 쓰는 것이고, ‘아랫집’은 더 열린 구조라 누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와는 경험과 속도가 조금 다르다. 어쨌든 우리도 손님들이 와서 지내기도 하고, 두 커플이 한 방을 쓰기 때문에 오늘은 어디서 잘 것인가를 매일 상의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런 과정이 재미있다.(웃음)

 

현정: 빈집 구성원들끼리 어떤 규칙이 있나? ‘밥 같이 먹기’와 같은...

아규: 규칙이라고 할 것은 없고, 한 달 한 번 하는 마을회의에 참석해달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공간을 깨끗하게, 다른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쓰고, 자기가 쓴 공간은 알아서 정리하고, 가능하면 세제 안 쓰고, 음식 남기지 말고. 이런 게 규칙이라면 규칙이다.

달군: 밥을 같이 먹자는 게 따로 정해진 규칙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반찬팀이 반찬 만들 때 시간 되는 사람들은 같이 밥 먹자, 그런 의미이다.

아규: 아랫집 오픈 첫 해에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적었는데, 같이 밥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따로 모임을 안 만들어도 밥 한 끼만 같이 먹으면 1~2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부엌 쓰는 문제, 청소하는 문제 등은 사실 규칙을 만들기 어렵다.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껄끄럽지 않게 문제들이 해결되곤 한다.  

 

현정: 빈집의 구성원들은 어떤가?

아규: 10대에서 50대까지 있다. 성비는 여성이 약간 많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대부분 정규직으로 일하는 걸 싫어하고, 오히려 정규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다양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보다 조금 덜 일하면서 돈을 덜 벌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필요한 만큼만 벌면서 사는 걸 선호한다.

달군: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면 적게 벌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게 가능하다. 사람들이 “가난한 것들이 먹는 거 하나는 끝내주게 잘 먹네.”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우리는 잡곡밥 먹고 쌀도 유기농이라 더 맛있다. 사실 잘 먹고 잘 사는 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현정: 빈집 내에 소모임이나 세미나 등이 있나?

달군: 현재 니체 강독 세미나, DIY워크샵 등을 진행하고 있다. 빈집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부인들도 참여 가능하다. 소모임에는 공부팀, 반찬팀, 공작빈(영상팀), 홈페이지팀 등이 있는데, 정기적으로 모임이 열린다기보다 ‘장 담그자’,‘김치 담그자’, ‘oo행사가자’라고 판을 벌리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모인다.

 

혜정: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배운 게 많았을 텐데?

달군: 일단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깨닫게 되었다(웃음). 무딘 성격인 줄 알았는데 예민한 부분도 있더라. 사람들과 잠깐씩 스칠 때는 몰랐는데 같이 살다보니까 부딪히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사실 말하면 해결될 문제들인데, 말하지 못하고 속에 쌓아놨었다. 처음에는 그런 게 힘들었다.

사 람들과 살면서 ‘프라이버시라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잠자리가 정해지면 내 자리에 이것저것 붙이면서 꾸미는데(일종의 영역표시랄까), 이건 뭐지? 왜 그럴까? 전에 가족들과 살면서 뭐가 문제였는지 더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살면서 관계에 대해 생각도 하고, 음식이나 청소 등 서로 몰랐던 살림의 기술을 공유도 하고 많은 걸 배우는 것 같다. 특히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게 마음먹으면 별 일은 아니구나, 혹은 반대로 정말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아빠가 함께 살지 않았고, 구성원들이 아이를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 엄마도 아이를 처음 키우는 거고, 특히 살림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 애달아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철없게 공동육아니 했는데, 지금은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서로 돌아가면서 봐주고, 아이와 함께 사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


혜정: 아랫집에 방문해보고 싶다. 지금 아랫집에는 몇 명이 지내고 있나? 어떤 상황인가?

아규: 아랫집에 12명이 지내고 있다. 방이 3개가 있는데 꽉 찬 상태다. 윗집을 정리하고 아랫집과 공간을 합치면서 집이 꽉 차게 되었다. 그래도 손님들이 드나들다보면 19명까지도 함께 있기도 한다.

오 픈 1년 정도 되었을 때, 구성원들 사이에서 불편함, 문제점 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모르는 사람이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등, 항상 낯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리모델링하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고 하고 있다. 전보다는 장기투숙하는 사람들의 개인 공간을 좀 더 보장하는 방식으로 굴러갈 것 같다.

 

혜정: 장기투숙의 경우 한 달에 얼마씩 부담하나?

아규: 옆집은 식비까지 8만원 정도인데, 아랫집은 이자가 좀 더 나와서 12만원씩 부담한다. 평균 8만원에서 12만원 정도다. 비용이 크지 않다보니 경제적인 이유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혜정: 장기투숙을 하고 싶으면 그냥 와서 살면 되나?

달군: 구성원들과 사전에 얘기해서 들어오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살려면 날마다 어디서 잘 것인가를 상의하고, 잠자리가 시시각각 바뀌는데, 그런 걸 견디는 사람만이 결국 장기투숙을 할 수 있는 것 같다.(웃음)

혜정: 빈집 구경 잘 하고, 이야기도 잘 듣고 간다. 이렇게 시간 내줘서 고맙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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